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스바흐 전투 (문단 편집) === 최초 배치 === [[파일:로스바흐전투1.jpg]] 1757년 11월 5일 아침, 프로이센군은 프리드리히 대왕의 지휘하에 왼쪽에는 로스바흐, 오른쪽에는 베드라를 낀 능선에 배치되었다. 한편 프랑스-오스트리아 연합군은 11월 4일에 왼쪽에는 뮈첼른, 오른쪽에는 브란데로다를 낀 능선에 주둔했다. 연합군의 초소는 프로이센군의 진영을 전부 살필 수 있었으며 수적으로도 거의 2배에 달했기에 누가 봐도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 공 [[요제프 프리드리히]]는 당장 공세를 감행하려 했지만 수비즈 공 샤를 드 로앙은 굳이 오스트리아를 위해 프랑스 장병들을 대거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서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핑계를 대며 즉각적인 공세를 거부했다. 이때문에 연합군은 11월 5일까지 진영을 철거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수비즈 공이 마침내 전투에 응하기로 하자, 요제프 프리드리히 빌헬름 장군은 다음과 같은 전략을 수립했다. 먼저 프로이센군의 좌익 근처인 제우츠펠트로 진군해 라이할트스베르벤을 오른쪽에 두고 페트스타트를 왼쪽에 둔 상태로 북쪽을 향해 전투 대형을 펼친다. 그 후 오스트리아군이 프로이센군과 정면에서 맞붙는 사이, 프랑스군이 적의 측면 근처를 따라 진군해 프로이센군의 좌익을 공격한다. 이러한 작전에 따라 연합군이 이동하자, 프리드리히 대왕은 로스바흐의 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적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그는 처음에는 적이 아군의 보급창고가 있는 남쪽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정찰을 위해 파견되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가우디 장군은 적의 종대가 제우츠펠트로부터 동쪽을 향해 나아가는 것을 보고 적의 목표가 남쪽이 아니라는 것을 알렸다. 이후 적의 기병과 보병대가 페트스타트 근교에 나타난 것을 확인한 프리드리히 대왕은 적이 아군의 측면을 공략하기 위해 이동 중이라는 걸 확인했다. 이에 그는 적을 유인하기 위한 비상한 전술을 전개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